직장친찰릴레이 - 홍천세무서
 
 최병숙 조사관-징세팀 20년 근무 항상 밝은 모습 닮고 싶은 선배 1
김동욱 조사관-짧은 경력 불구 따뜻한 마음 가진 국세청 미래 인재
최재술 세원관리과장-납세자 불편 해소 명랑한 사무실 조성에 앞장
이병길 운영지원과장-직원들 간 가교역할 충실 외유내강형 관리자
윤경필 서장-따듯한 감성과 남다른 열정 소유 직원과 격의없이 소통
 
홍천세무서(서장 윤경필)19345월에 설립됐으며, 199512월 현 청사로 이전했다. 20081월 인제민원실을 개소해 관할구역이 전국에서 가장 넓다. 홍천세무서 직원들은 지역납세자와 현장에서 상호 공감하는 공정과 신뢰의 세정을 통해 세법을 투명하게 집행하고 납세자가 납세의무를 불편 없이 이행할 수 있도록 납세자 한분 한분을 섬기는 마음으로 근무하고 있다. 지난 1월 설 명절맞이 이웃사랑 나눔 행사때는 나눔과 봉사문화 확산을 위해 조손가구, 저소득 가구 등 소외된 이웃을 방문하여 성금과 쌀을 전달했다. 사무실에 직원들이 모여 칭찬릴레이를 시작했다.
 
윤경필 세무서장이 최병숙(60) 조사관을 칭찬했다. 징세팀에서 20여 년간 근무하고 있는 최 조사관은 과중한 업무를 숙련된 노하우와 열정으로 감당하며, 항상 밝은 모습으로 근무하여 타 직원에게 귀감이 되는 모범 직원이다. 사무실의 맏언니로서, 때로는 엄한 선배로서 직원들이 서로 소통하는데 교량 역할을 하여 항상 1등으로 신입 직원들이 닮고 싶은 선배로 뽑힌다. 부모님 상을 당한 상황에서도 주말에 출근해서 긴급한 업무를 마무리한 일은 직원들에게 프로정신이 무엇인가를 보여준 사례가 되고 있다. 납세자들의 소소한 민원사항에 대해서도 항상 친절히 응대하여 홍천세무서의 이미지 제고에도 크게 기여했다. 현재 수타사 합창단에서 5년째 부단장으로 활동하면서 지역봉사에도 참여하고 있으며, 2년 전부터 신도회 감사직도 수행하고 있다.
 
최 조사관은 김동욱(26) 조사관을 칭찬했다. 민원봉사실에 근무하고 있는 김 조사관은 군 복무기간을 제외하면 2년 정도의 짧은 근무 경력에도 불구하고 학창시절에 배운 세법과 평소 쌓은 실무경험을 바탕으로 신속하게 일처리를 하고 친절하게 민원상담을 하고 있는 우수한 직원이다. 민원봉사실에는 두 명이 근무하고 있는데 한 명이 교육을 가는 등 공석이 생길 경우에도 흐트러짐 없이 민원업무 처리에 최선을 다한다. 그 결과 지난해 민원봉사실 업무추진 실적 우수 부서로 선정되는데 크게 기여했고, 지난해 연말에 발령받은 신규 직원의 멘토 역할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손이 불편하거나 귀가 잘 안 들리는 어르신들을 위해 직접 민원신청서를 써주기도 하고, 돌아갈 때에는 콜택시를 불러주기도 하는 등 따뜻한 마음도 가진 국세청 미래인재이다.
 
김 조사관은 최재술(59) 세원관리과장을 칭찬했다. 지난해 1월에 부임한 최 과장은 개인사업자, 법인, 개인 납세자의 세금관련 업무를 총괄한다. 부가가치세 등을 납기 내에 납부하지 못하는 사업자를 위해 납기연장, 징수유예 등으로 사업자들의 어려움을 해소하는데 힘쓴다. 일반인이 부동산 등을 매매할 경우 양도소득세 등을 자진 납부하기 위해 세무서를 내방하면 가족처럼 친절하고 세심하게 상담해주어 납세자의 애로와 불편을 해소하는데 앞장서서 직원들로부터 닮고 싶은 관리자상이라는 평을 듣는다. 국세청 30여 년의 오랜 경륜을 바탕으로 활기차고 명랑한 사무실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직원들이 서로 부족한 부분을 챙겨주도록 하고, 신규 직원에게는 경력 직원이 1:1 멘토 역할을 하도록 하여 모든 직원들이 미소를 잃지 않고 업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노력한다.
 
최 과장은 이병길(50) 운영지원과장을 칭찬했다. 1989년에 입사한 이 과장은 국세청 대표 격무부서인 본청 감사관실에서 승진한 후 신임사무관으로 지난 1월에 부임했다. 외유내강의 관리자로 평소 조용하고 따스한 성품으로 총무, 예산관리, 조사관리, 회계 등 업무를 차분하고 꼼꼼하게 챙긴다. 직원들이 업무를 잘 습득할 수 있도록 조목조목 가르치고 챙겨주며 멘토 역할을 톡톡히 해서 직원들도 그런 이 과장을 잘 따르고 있다. 이렇게 직원들 간의 가교 역할을 충실히 하면서 소통이 원활하여 소속 직원들의 업무효율을 끌어올리고, 이를 토대로 국민의 성실납세를 지원함으로써 납세자들로부터 신뢰 받는 세무서가 되도록 분위기를 잘 이끌어 주고 있다. 그는 관내 기업체를 비롯한 대부분의 납세자가 성실하게 세금을 잘 납부해 주셔서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이 과장은 윤경필(56) 세무서장을 칭찬했다. 지난해 6월 부임한 윤 서장은 공정하고 투명한 세정 서비스를 통해 지역사회와 상생하는 납세 행정을 펼쳐나가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취임사에서 밝힌 대로 세정의 일선에서 따뜻한 감성과 남다른 열정으로 국민의 성실납세를 지원하고 있다. 지난해 11월에는 민원인들의 편의를 도모하기 위해 홍천군의 지원을 받아 민원봉사실에 자동민원발급기를 설치했다. 인제군민들이 충분한 납세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인제민원실을 수시로 방문하여 직원을 격려하고 부가가치세 신고창구에 베테랑 직원을 파견하는 등 납세행정 지원도 아끼지 않고 있다. 평소 운동을 좋아해서 직원들과 어울려 테니스, 탁구, 당구 등을 함께 즐기며 격의 없이 소통하고 있다. 그는 인터넷 상에 방문상담 예약세무서장과의 대화방을 운영하고 있으니 애로 및 개선 사항에 대한 의견을 주시면 직접 검토해서 세정에 반영하겠다고 말했다.
 
사무실에 모인 직원들은 서로를 칭찬하면서 모든 납세자들에게 친절하고 신속하고 공정한 서비스를 제공하도록 최선을 다해 노력할 것을 다짐했다.
 
최정규 기자

01
동면 노천리 효죽과 형제 바위의 전설
 동면 노천리 효죽과 형제 바위의 전설
 아버지 잃은 형제의 원통함이 바위로 변했다
 
옛날 아주 옛적에 노천 땅 숫대배기라는 곳에 두 아들을 둔 홀아비 홍씨가 비록 가난하지만 단란하게 살고 있었다. 남달리 효심이 많은 두 아들은 아버지를 봉양하는데 온갖 정성을 다해 인근 마을에 널리 알려졌다. 그런데 호사다마라. 이 집안에 불행한 일이 생기고 말았다. 홍씨는 원인 모를 병에 걸렸고, 두 아들은 아버지의 병환을 치료하기 위해 온갖 정성을 다하였지만 별다른 차도가 없었다.
그날도 형제는 아버지의 병환을 걱정하면서 서로 부둥켜안고 한참을 슬퍼하고 있었다.
형 참 이상한 일도 다 있지. 간밤에 꿈을 꾸었는데 말이야.” “꿈 무슨 꿈을?”
글쎄 이상한 일이야.” “어서 말 해봐.”
어느 깊은 산속인데 하늘이 캄캄해지고 비바람이 부는 바람에 내가 길을 잃고 헤매게 되었어. 나는 겁이 나서 아버지와 형을 부르고 있었는데 내 앞에 하얀 도포를 입은 노인이 지팡이를 짚고 나타나 신약을 가르쳐 주셨어. 이 산을 지키는 산신령이라며 너희들의 정성이 하도 가상하여 아버지의 병에는 새로 돋아난 죽순이 신약이라며 알려 주며 사라지고 말았어. 꿈속에서 신령님을 부르다가 깨어 버렸어.”
아우야 그게 사실이냐. 그렇다면 나도 사실은 말이야. 너와 똑 같은 꿈을 꾸었단다. 아무래도 심상찮은 꿈이다. 그렇다면 그 꿈이 맞을 지도 모르니 내일부터 죽순을 찾아보자. 이 세상 어딘가에 죽순이 있을 거야.“ “아우야 그렇지만 어떻게 너 혼자 보낼 수도 없고 같이 가면 아버지의 간호를 할 사람이 없으니.” “형은 간호나 열심히 해 나 혼자 꼭 죽순을 찾아오고 말거야!“ 이튿날 아우는 산속으로 죽순을 찾아 나섰다. 몇 날 밤 낮을 헤맨 끝에 죽순을 구해 한달음에 집에 돌아와 보니 아버지는 이미 저 세상으로 가고 없었다. ”아버지 아버지~~ 병을 낫게 한다는 죽순을 가져 왔습니다. 어서 일어나세요. 아버지.....“
두 형제는 서로 붙들고 목이 터져라 통곡을 했다. 울어도 울어도 원통함을 달랠 수 없어 몸이 굳어진 채 바위가 되어 버렸다.
후세 사람들은 지극한 효성을 다했지만 끝내 아버지를 구하지 못하고 바위가 되어버린 형제 바위를 효심의 교훈으로 삼아 이곳에서 많은 효자가 나왔다고 하여 이 형제 바위를 죽순 암이라 부르기도 한다고 전해온다.
 
이광명 기자

01
홍천 한서 남궁억 묘역
1977년 조성 무궁화 모양의 봉분이 눈길
 
홍천군 서면 모곡리 한서초교 뒷산에 위치한 남궁억 선생의 묘역은 20001118일 기념물 제77호로 지정됐다.
홍천을 대표하는 인물을 기리고자 국가의 지원, 지역인사의 성원, 주민들의 열정적 참여를 통해 1977년에 조성된 것이다.
남궁억(1863~1939) 선생은 교육자이자 언론인으로 황성신문을 창간해 일제의 침략 야욕을 폭로하고, 무궁화 보급운동과 국어·국사 교육을 통해 민족정신을 고취한 독립운동가이다.
1863년 철종 14년에 서울에서 태어났다. 영어학교인 동문학을 수료하고 고종의 어전통역관이 되어 관직에 나갔다. 아관파직 후에 사직하고 독립협회 관동학회를 창립했으며, 1898년 나수연 등과 함께 황성신문을 창간, 일본의 침략 야욕을 폭로하는 등 언론활동을 적극 전개하다가 투옥되기도 하였다.
1906년 고종의 요구로 성주목사, 양양군수를 지냈으나 고종이 강제 퇴위되자, 사임하고 대한협회 관동학회를 창립하여 애국계몽운동을 전개하였다. 1910년 일본이 우리나라를 강탈하자 배화학당의 교사가 되어 독립사상 고취, 애국지사 보급, 한글 보급에 힘썼다. 1918년 선조의 고향인 홍천군 서면 보리울에 낙향하여 1919년 모곡학교(牟谷學校}를 설립하고 무궁화 보급 운동을 전개하였다. 1933년 독립운동의 비밀결사인 십자당(十字黨)을 조직하여 활동하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투옥되었다. 고령이 참작되어 석방 되었으나, 잔혹한 고문의 여독으로 1939년 사망하였다. 저서로는 동사락과 조선 이야기 등이 있다.
남궁억의 묘역은 7541로 중앙에 계단을 두고 크게 3단으로 구성하였는데 최상단인 3단 중앙에 남궁억 선생의 묘가 있다. 묘의 배치는 봉분 전면에 상석을 두고, 상석 우측에 묘비를 세웠다. 그 앞으로 망주석 1쌍을 두었다. 봉분은 무궁화 문향을 한 원형의 보호석을 둘렀고, 후면으로 곡담이 봉분을 에워싸고 있다. 입구에는 선생의 묘역 정화 기념비가 있다.
박영권 기자

01
다문화가정 홍천읍 윌마 모라레스 씨
남편 음식솜씨 좋아 한국음식 적응 빨랐어요
운전면허 8번째 합격 10년 이상 직장생활 억척맘
시부모·시동생 부부와 함께 살아 대가족에 익숙
 
필리핀에서는 한두 살 차이는 친구해요. 한국에서는 그러지 말아야지! 혼나요! 친구해도 되냐고 물어보면 안 된다고 그래요. 꼭 언니로 불러야 해요.”
필리핀에서 홍천읍으로 시집온 윌마 모라레스(43) 씨는 한국의 유별난 종적인 문화의 문제점을 꼬집었다. 또 시부모 밑에서 살아온 며느리의 고충을 털어놨다.
그녀는 필리핀의 이사벨라 산티아고에서 아버지 윌프레도 모라레스(61) 씨와 어머니 아니따 사윗(60) 씨의 11녀 중 맏이로 태어났다. 부모님은 농사를 지으며 마트를 운영했다. 그녀는 산티아고에 있는 노스 이스턴대학(north eastern college)2년 수료하고 가정 사정으로 중퇴했다. 마닐라에 있는 참치공장을 2년간 다닌 후 마트에서 2년 동안 경리를 했고, 그 후 집에서 부모님과 함께 과일 도매상을 했다.
19991210일 필리핀 통일교회에서 남편 장인수(49) 씨를 만났다. 남편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목사로 재직 중인 삼촌이 마음에 안 들어도 배우자로 정해준 사람을 바꾸면 안 돼!” 라고 해서 속상해 많이 울었다. 그러나 남편은 처음 볼 때와 달리 정이 많고 괜찮은 사람이었다. 그해 1216일 결혼하고 200027일 한국에 왔다. 홍천읍내에 있는 통일교회에서 한 달간 머물며 한국어, 음식, 문화 등을 익혔다. 통일교회 내에는 함께 온 친구들도 많고 손짓하며 서로 의사소통이 되어 불편함을 몰랐으나 시댁에 와서는 시부모와 남편이 어렵고 말을 못해 답답하고 머리가 아팠다. 남편이 책을 사다줘 남편과 소통을 했다.
남편 장 씨는 아버지 장원익(80) 씨와 어머니 동상윤(76) 씨의 22녀 중 장남이었다. 남편은 홍천농고를 졸업하고 건축 일을 하고 있었다. 시댁은 5,000여 평에 시부모가 농사를 지었고 결혼 전인 시동생도 함께 살고 있었다. 시어머니가 건강해 안팎살림을 원만하게 꾸려가고 있었다.
처음 한국에 와서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 먹을 수 없었다. 남편이 주방으로 그녀를 데리고 갔다. 김치에 돼지고기와 두부를 넣고 찌개를 끓여 그녀에게 맛보였다. 김치는 못 먹었는데 김치찌개는 맛이 있었다. “앞으로 이렇게 만들어 먹으면 된다.”고 했다. 시어머니를 닮아 남편은 음식솜씨가 좋아 다른 반찬도 잘 만든다. 덕분에 그녀는 지금도 김치찌개를 좋아한다.
2002년 첫딸 미경(16)을 낳았고 이어 둘째딸 봉경(12), 셋째 딸 현경(10)을 낳았는데 그녀는딸들을 낳을 때가 한국에 와서 가장 기뻤다.”고 했다.
20032살 된 큰딸을 데리고 남편과 함께 보름동안 친정을 다녀왔다. 스프링가든 등 공원과 고모네 집 근처 바닷가에서 보내다 왔다. 2006년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둘째 딸까지 데리고 2번째로 고향을 10일간 다녀왔다.
남편이 그녀에게 운전면허 취득을 권했다. 1종 면허시험을 보게 했는데 한국어 학과시험에서 매번 60점대에 머물러 떨어지자 남편이 화가 나서 2종으로 바꾸라고 했다. 셋째 딸을 업고 다니며 2종으로 바꿔 시험을 치러 8번째에 합격했다. 200882종 자동차운전면허를 취득했다. 지금은 1종 면허로 집에 있는 트럭을 자유롭게 운전한다.
면허증 취득으로 그녀는 취업을 하게 됐다. 6개월 된 셋째 딸과 큰딸들을 시부모와 어린이집에 맡기고 집밖의 일을 시작한지 10년이 넘었다. 상오안리의 산돌식품 4, 대명비발디파크 1, 화전리 농공단지의 맑은들()3년을 다녔다. 허리가 아파 1년간 쉬면서 집에서 가지 농사를 지어 농협에 출하했다. 현재 북방에 있는 참맛드림 홍천농장에서 일한 지 1년이 넘었다. 6일 근무로 일요일만 쉬기 때문에 항상 빡빡한 일정이다. 시집온 지 17년이 넘었지만 친정을 두 번 다녀온 것 외에는 놀러 다닌 곳이 없는데 이는 부부가 나들이를 별로 즐기지 않는 탓도 있다.
처음 시집와서 시어머니가 음식을 많이 장만하는 것이 이상했다. 밥상 위에 국에서부터 이것저것 여러 가지 반찬을 놓는 것이 번거롭고 왜 힘들게 많이 할까?‘ 하고 생각했다. 반찬 그릇이 많기 때문에 설거지 분량 또한 많아 그녀를 더 힘들게 했다. 필리핀에서는 음식 한두 가지로 밥상에 차리지 않고 본인들이 알아서 찾아 먹는다. 현재 시부모와 시동생 내외, 조카들 2, 그녀의 식구 5명 등 11명의 대식구가 한집에 북적이며 살고 있다. 지금은 모든 것이 이해가 되고 대식구라 음식도 많이 만드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가짓수가 많은 제사음식도 다 만들 수 있다.
한국에 와서 20여 년 가까이 살았지만 가끔씩 혜화동에 있는 필리핀 식료품점에서 식재료를 택배로 받아 필리핀음식을 만들어 먹는다. 남편은 필리핀 쌀이 밥맛이 없다고 하지만 그녀는 아직도 한국의 차진 쌀밥보다는 고슬고슬한 필리핀의 쌀밥이 더 맛있다.
그녀는 열심히 일을 하고 전세자금을 마련해 집을 얻어 분가를 하고 싶다고 했다.
 
이옥희 기자

01
경로당탐방-북방면 도사곡리경로당
 회원 19명 한 가족처럼 단결력 최고
 2016년 홍천군수 표창 수상 등 행복이 가득한 곳
도로변 꽃길 가꾸기...참여 부녀회장 지원에 칭송
 
 
홍천군 북방면 도사곡리 경로당은 200011월 준공했다. 이곳에서 생활하는 어르신들은 행복이 차고 넘치고 있다. 초대 회장은 김태성(90) 씨가 맡았고, 2대 회장은 한기용(81) , 현재 3대 회장은 연규태(80) 씨가 맡아 경로당을 운영하고 있다.
도사곡리 경로당은 북방면 20개 경로당 중 부사원 경로당과 함께 회원이 20명이 안 되는 작은 경로당이다. 하지만 회원이 많은 경로당 못지않게 알찬 결실과 일치된 마음으로 누구라 할 것
없이 회원 가정에 대소사가 있으면 빠짐없이 참석하는 단결력을 보이는 등 다른 경로당의 모범이 되고 있다.
최고령자인 지복남(89) 씨는 건강하고 웃어른 역할을 하고 있으며, 가장 어린 황윤철(66) 씨는 모든 일에 앞장서는 등 회원 모두가 책임 분담이 잘 이루어져 한 가족처럼 생활하고 있다.
지난달에는 보건소 주최 구강교육과 치료, 치매교육과 건강걷기 운동이 열려 전 회원이 걷기운동에 참여했다.
도사곡리는 2016년 홍천군 창조마을로 선정되어 사업비 200만 원을 지원받아 도로변 꽃길 가꾸기와 길 닦는 일을 하고 있다. 올해는 500만 원의 예산을 지원받아 꽃길 가꾸기 사업을 한다. 내달 마을에서 우리농촌 현장 포럼행사가 열린다.
도사곡리는 버스 노선이 불편해 회원들이 홍천군에서 운영하는 100원을 지불하고 타는 택시를 이용하고 있는데 편리해서 다른 지역을 오고 갈 때 자주 이용한다.
도사곡리 경로당은 2016년 군수표창을 받았으며, 이순녀 마을부녀회장이 경로당을 수시로 방문해 점심식사를 제공하는 등 적극적인 협조로 회원들로부터 칭찬을 받고 있다.
회원 수는 남자 8, 여자 11명으로 총19명이며, 일자리창출에는 남자 2, 여자 2명이, 재능나눔에는 2명이 참여하고 있다.
 
 
직 책
성 명
연 령
직 업
회장
연규태
80
목사
부회장
염정숙
86
주부
사무장
홍익표
79
농업
감사
한흥수
67
농업
033-434-3994
 
안태수 기자
 
 우리 마을로 귀농귀촌하면 적극 돕겠습니다
올해 모든 회원들이 건강하고 밝은 마음으로 즐겁게 보낼 수 있기를 바란다
 
연규태(80) 회장은 올해 바람으로 회원들의 건강을 최우선적으로 꼽았다. 연 회장은 40여 년 동안 목사로 활동한 은퇴성직자이다. 1982년 처음 홍천과 인연을 맺은 내면 창촌리의 교회 목사를 마지막으로 은퇴했다. 20075월 도사곡리에 정착했다. 20151월부터 회장직을 맡아 생애 마지막 봉사라 생각하고 부인 염정애(79) 씨와 거의 매일 경로당으로 출근하고 있다.
연 회장은 “20명도 채 안 되는 작은 경로당이 문제가 아니고 30여 가구뿐인 마을이 점점 작아지는 것이 너무 안타깝다면서 우리 마을로 귀농귀촌하는 도시민들에게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옛날의 70여 가구가 살던 풍요로운 마을을 그리워하며 가족 같은 경로당 분위기와 일가친척 같은 마을 분위기를 자랑했다.
연 회장은 슬하에 5남매를 두고 있다. 목사인 아들과 사위가 홍천읍에서 교회를 운영하고 있다.
 
박세구 기자

01
귀농귀촌인이야기 서석면 이명자,이군재 씨 부부
서석서 개암나무에 제2인생 걸었어요
개암나무 3~4년 후면 고소득 예상 농촌생활 만족
원주민에 먼저 다가가 친목 다져 지금은 이웃사촌
 
주방의 식탁이 편하고 좋아요. 주변 경치도 너무 좋고요.”
이명자(64) 씨는 이렇게 말하며 남편 이군재(65) 씨를 불렀다. 그녀의 말처럼 창문을 통해 비춰진 바깥 경치는 잘 다듬어진 정원처럼 아름다웠다.
이 씨 부부가 사는 곳은 서석면이다. 큰 도로에서 산 쪽으로 외길을 타고 한참을 들어가야 도착한다. 주변에는 맑은 물이 흐르고 개울 건너 산들이 병풍처럼 드리워져 있다.
그녀의 집을 방문했을 때 식탁에는 군고구마와 제사음식이 남아 있었다. 거실에서 커피를 마시며 이 씨 부부의 귀농 이야기를 들었다.
이군재 씨는 건축업에 종사하다 은퇴 후 2013년 곧바로 귀농을 결심해 실행에 옮겼다고 한다. 태어난 곳은 경기도 송산인데 어렸을 때 집에서 포도 농장을 했다.
그는 농촌의 삶은 어려서부터 몸에 배어 있어 귀농을 자연스럽게 실천에 옮겼어요. 현직에 있으면서 집을 지었는데 친구와 회사의 도움을 받아 비교적 수월하게 지을 수 있었다고 했다. 자녀는 아들 딸 둘인데 서울에서 출가해 살고 있다. 서울의 집은 자녀들이 살고 있어 그대로 물려주다보니 노후자금이 부족하다고 했다. 현재는 인근 밭에 블루베리와 개암나무를 재배해 판매하는 소득이 전부여서 열심히 농사를 짓고 있다. 손녀딸이 자주 놀러오고 흙을 좋아해서 제초제를 쓰지 않는다. 손녀딸을 위해 수영장도 만들었다.
개암나무는 2013년부터 심기 시작했다. 그때는 작목협회가 결성되지 않아 보조금이 없어 힘들었다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지난해 고소득 작물로 분류가 되어 보조금을 지원받기 시작했다. 최근 개암열매의 시세가 1kg25000원 정도 하고 있어 3~4년 정도 지나면 1그루에 5만원의 수입이 가능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하지만 개암나무가 비탈진 밭에 자라고 있어 퇴비를 지게로 나르고 물도 져 날라야 한다. 그래서 행정기관에 관정 개발과 운반차를 지원받을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고 했다.
처음 이곳에 집을 지으면서 원주민들에게 먼저 다가가 친목을 다졌다. 마을에 정착을 하면서 마을 사람들에게 식사를 대접하고 따뜻하게 대하면 원주민들이 살기 위해서 온 사람들을 잘 받아 주겠지 하는 마음으로 성심을 다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나아진 것이 없어 마을회의에 참석해 여기에 살려고 오는 사람도 이웃이니 이웃으로 받아 달라며 진심을 말했다고 한다. 그리고 말보다는 행동으로 보여주기 위해 트랙터 교육을 받아 마을 사람들의 밭을 갈아 주기도 하고 건설 쪽에서 일했기 때문에 문짝도 수리해 주었더니 지금은 아주 사이가 좋아졌다고 한다. 이명자 씨는 블루베리 묘목도 나눠줘 인심을 얻었다. 집을 지을 때는 비가 새는 천막에서 인부들에게 하루 5끼의 식사를 대접할 때가 너무나 힘들었다며 그때 남편과 평생 싸울 것을 다 싸웠다며 웃었다.
그녀는 귀농귀촌은 철저한 계획을 세워야 실패를 하지 않고 보람을 느낀다며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지금은 땅에 투자를 해 여유자금이 없는 것이 안타깝지만 100%의 만족을 느끼며 생활하고 있다. 이들 부부는 현재 농촌생활에 만족해하고 있다.
이들이 운영하는 농장은 황정골 향기 농원이다. 이명자 씨는 개암나무를 잘 가꾸어 수익도 올리고 홍천으로 귀농귀촌하는 분들에게 모범이 되도록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손녀가 셋인데 여기 와서 재미있게 놀며 커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사는 것이 가장 큰 즐거움이라며 행복한 웃음을 지었다.                                                          
김정헌 기자

01
밸리댄스반..
패션모델 된 느낌 자신감 절로 생겨요
장기 기능 강화 요실금 등 노인성질환 예방에 탁월
여성 아름다움 뽐내는 정열적이고 다산 상징의 춤
 
밸리댄스는 몸매관리와 스트레스 해소에 최고! 여성의 아름다움과 매력을 보여 준다
홍천군노인복지관 밸리댄스반원(반장 장미자·67)들은 밸리댄스의 장점을 이렇게 표현했다.
이들은 매주 금요일 오전 10~1150분까지 주1회 홍천군노인복지관 본관2층 놀이터에서 이은경 강사의 지도로 밸리댄스를 배우고 있다.
장 반장은 밸리댄스는 마치 공작새가 날갯짓을 하듯 유연하게 좌우로 움직이면서 때로는 사시나무 떨듯 몸 전체의 세포를 털어내듯이 쌓여있는 스트레스와 몸속의 찌꺼기를 날려 보낸다고 했다. 또 나이가 들면 가장 안 빠지고 쌓이는 부위가 바로 등살인데 각 신체의 부분 부분을 세분화하고 특화시키는 동작이 기본이라고 했다.
심지어 뱃살도 윗배 아랫배를 위에서 밑으로 밑에서 위로 밀면 내장마사지가 쭉쭉 되는 것 같다고 했다.
특히 이라는 골반을 움직이는 동작이 있는데 자궁내부근육과 요실금에 탁월한 운동효과가 있다고 했다. 우스갯소리로 밤의 여왕이 될 수 있는 비법이라며 엄지손가락을 번쩍 치켜들고 활짝 웃어보였다.
엄선웅 씨는 밸리댄스의 아름다운 자태에 심쿵해서 배우게 됐다고 했다. 밸리댄스는 다이어트와 장기 기능을 강화시키는 운동이며 복부의 다양한 동작으로 인해 소화가 잘되고 노인성질환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고 했다.
다른 스포츠나 댄스에 비해 뛰거나 격렬하지 않음에도 에너지 소모량이 커서인지 6개월 정도 꾸준히 했더니 몸매가 호리호리한 바디라인으로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며 몸매 교정 효과를 자랑했다. 아름다운 몸매와 유연성을 유지하면 자신도 모르게 자신감이 생기고 때로는 거울 앞에서 자신의 몸매를 감상하며 패션모델이 된 기분이라고 했다.
이 강사는 밸리댄스는 터키나 이집트를 비롯한 아랍의 전통춤으로서 아랍문화권에서는 이성을 유혹하는 춤으로 창안되었다. 하체 복부를 유연하게 여성관능미와 아름다움을 한껏 뽐내는 정열적이고 다산을 상징하는 춤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요즘은 젊은 여성뿐 아니라 가정주부들도 몸매관리와 스트레스 해소는 물론 과감한 의상을 입고 여성의 아름다움을 과시하는 대중화된 스포츠댄스가 되었다. 이는 유리천장을 올려다보며 사는 여성에게 신이 내린 선물이라고 했다.
이 강사는 일찍이 밸리댄스 강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허은준 발레하우스에서 밸리댄스 강사로 활동하고 있는 액티브 강사이다.                                             
조정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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