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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천실버뉴스 > 메인기사 > 다문화가정 홍천읍 윌마 모라레스 씨
 
작성일 : 17-04-19 12:30
다문화가정 홍천읍 윌마 모라레스 씨
 글쓴이 : 홍노복
조회 : 164  

남편 음식솜씨 좋아 한국음식 적응 빨랐어요
운전면허 8번째 합격 10년 이상 직장생활 억척맘
시부모·시동생 부부와 함께 살아 대가족에 익숙
 
필리핀에서는 한두 살 차이는 친구해요. 한국에서는 그러지 말아야지! 혼나요! 친구해도 되냐고 물어보면 안 된다고 그래요. 꼭 언니로 불러야 해요.”
필리핀에서 홍천읍으로 시집온 윌마 모라레스(43) 씨는 한국의 유별난 종적인 문화의 문제점을 꼬집었다. 또 시부모 밑에서 살아온 며느리의 고충을 털어놨다.
그녀는 필리핀의 이사벨라 산티아고에서 아버지 윌프레도 모라레스(61) 씨와 어머니 아니따 사윗(60) 씨의 11녀 중 맏이로 태어났다. 부모님은 농사를 지으며 마트를 운영했다. 그녀는 산티아고에 있는 노스 이스턴대학(north eastern college)2년 수료하고 가정 사정으로 중퇴했다. 마닐라에 있는 참치공장을 2년간 다닌 후 마트에서 2년 동안 경리를 했고, 그 후 집에서 부모님과 함께 과일 도매상을 했다.
19991210일 필리핀 통일교회에서 남편 장인수(49) 씨를 만났다. 남편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목사로 재직 중인 삼촌이 마음에 안 들어도 배우자로 정해준 사람을 바꾸면 안 돼!” 라고 해서 속상해 많이 울었다. 그러나 남편은 처음 볼 때와 달리 정이 많고 괜찮은 사람이었다. 그해 1216일 결혼하고 200027일 한국에 왔다. 홍천읍내에 있는 통일교회에서 한 달간 머물며 한국어, 음식, 문화 등을 익혔다. 통일교회 내에는 함께 온 친구들도 많고 손짓하며 서로 의사소통이 되어 불편함을 몰랐으나 시댁에 와서는 시부모와 남편이 어렵고 말을 못해 답답하고 머리가 아팠다. 남편이 책을 사다줘 남편과 소통을 했다.
남편 장 씨는 아버지 장원익(80) 씨와 어머니 동상윤(76) 씨의 22녀 중 장남이었다. 남편은 홍천농고를 졸업하고 건축 일을 하고 있었다. 시댁은 5,000여 평에 시부모가 농사를 지었고 결혼 전인 시동생도 함께 살고 있었다. 시어머니가 건강해 안팎살림을 원만하게 꾸려가고 있었다.
처음 한국에 와서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 먹을 수 없었다. 남편이 주방으로 그녀를 데리고 갔다. 김치에 돼지고기와 두부를 넣고 찌개를 끓여 그녀에게 맛보였다. 김치는 못 먹었는데 김치찌개는 맛이 있었다. “앞으로 이렇게 만들어 먹으면 된다.”고 했다. 시어머니를 닮아 남편은 음식솜씨가 좋아 다른 반찬도 잘 만든다. 덕분에 그녀는 지금도 김치찌개를 좋아한다.
2002년 첫딸 미경(16)을 낳았고 이어 둘째딸 봉경(12), 셋째 딸 현경(10)을 낳았는데 그녀는딸들을 낳을 때가 한국에 와서 가장 기뻤다.”고 했다.
20032살 된 큰딸을 데리고 남편과 함께 보름동안 친정을 다녀왔다. 스프링가든 등 공원과 고모네 집 근처 바닷가에서 보내다 왔다. 2006년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둘째 딸까지 데리고 2번째로 고향을 10일간 다녀왔다.
남편이 그녀에게 운전면허 취득을 권했다. 1종 면허시험을 보게 했는데 한국어 학과시험에서 매번 60점대에 머물러 떨어지자 남편이 화가 나서 2종으로 바꾸라고 했다. 셋째 딸을 업고 다니며 2종으로 바꿔 시험을 치러 8번째에 합격했다. 200882종 자동차운전면허를 취득했다. 지금은 1종 면허로 집에 있는 트럭을 자유롭게 운전한다.
면허증 취득으로 그녀는 취업을 하게 됐다. 6개월 된 셋째 딸과 큰딸들을 시부모와 어린이집에 맡기고 집밖의 일을 시작한지 10년이 넘었다. 상오안리의 산돌식품 4, 대명비발디파크 1, 화전리 농공단지의 맑은들()3년을 다녔다. 허리가 아파 1년간 쉬면서 집에서 가지 농사를 지어 농협에 출하했다. 현재 북방에 있는 참맛드림 홍천농장에서 일한 지 1년이 넘었다. 6일 근무로 일요일만 쉬기 때문에 항상 빡빡한 일정이다. 시집온 지 17년이 넘었지만 친정을 두 번 다녀온 것 외에는 놀러 다닌 곳이 없는데 이는 부부가 나들이를 별로 즐기지 않는 탓도 있다.
처음 시집와서 시어머니가 음식을 많이 장만하는 것이 이상했다. 밥상 위에 국에서부터 이것저것 여러 가지 반찬을 놓는 것이 번거롭고 왜 힘들게 많이 할까?‘ 하고 생각했다. 반찬 그릇이 많기 때문에 설거지 분량 또한 많아 그녀를 더 힘들게 했다. 필리핀에서는 음식 한두 가지로 밥상에 차리지 않고 본인들이 알아서 찾아 먹는다. 현재 시부모와 시동생 내외, 조카들 2, 그녀의 식구 5명 등 11명의 대식구가 한집에 북적이며 살고 있다. 지금은 모든 것이 이해가 되고 대식구라 음식도 많이 만드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가짓수가 많은 제사음식도 다 만들 수 있다.
한국에 와서 20여 년 가까이 살았지만 가끔씩 혜화동에 있는 필리핀 식료품점에서 식재료를 택배로 받아 필리핀음식을 만들어 먹는다. 남편은 필리핀 쌀이 밥맛이 없다고 하지만 그녀는 아직도 한국의 차진 쌀밥보다는 고슬고슬한 필리핀의 쌀밥이 더 맛있다.
그녀는 열심히 일을 하고 전세자금을 마련해 집을 얻어 분가를 하고 싶다고 했다.
 
이옥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