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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천실버뉴스 > 메인기사 > 홍천 한서 남궁억 묘역
 
작성일 : 17-04-19 12:33
홍천 한서 남궁억 묘역
 글쓴이 : 홍노복
조회 : 177  

1977년 조성 무궁화 모양의 봉분이 눈길
 
홍천군 서면 모곡리 한서초교 뒷산에 위치한 남궁억 선생의 묘역은 20001118일 기념물 제77호로 지정됐다.
홍천을 대표하는 인물을 기리고자 국가의 지원, 지역인사의 성원, 주민들의 열정적 참여를 통해 1977년에 조성된 것이다.
남궁억(1863~1939) 선생은 교육자이자 언론인으로 황성신문을 창간해 일제의 침략 야욕을 폭로하고, 무궁화 보급운동과 국어·국사 교육을 통해 민족정신을 고취한 독립운동가이다.
1863년 철종 14년에 서울에서 태어났다. 영어학교인 동문학을 수료하고 고종의 어전통역관이 되어 관직에 나갔다. 아관파직 후에 사직하고 독립협회 관동학회를 창립했으며, 1898년 나수연 등과 함께 황성신문을 창간, 일본의 침략 야욕을 폭로하는 등 언론활동을 적극 전개하다가 투옥되기도 하였다.
1906년 고종의 요구로 성주목사, 양양군수를 지냈으나 고종이 강제 퇴위되자, 사임하고 대한협회 관동학회를 창립하여 애국계몽운동을 전개하였다. 1910년 일본이 우리나라를 강탈하자 배화학당의 교사가 되어 독립사상 고취, 애국지사 보급, 한글 보급에 힘썼다. 1918년 선조의 고향인 홍천군 서면 보리울에 낙향하여 1919년 모곡학교(牟谷學校}를 설립하고 무궁화 보급 운동을 전개하였다. 1933년 독립운동의 비밀결사인 십자당(十字黨)을 조직하여 활동하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투옥되었다. 고령이 참작되어 석방 되었으나, 잔혹한 고문의 여독으로 1939년 사망하였다. 저서로는 동사락과 조선 이야기 등이 있다.
남궁억의 묘역은 7541로 중앙에 계단을 두고 크게 3단으로 구성하였는데 최상단인 3단 중앙에 남궁억 선생의 묘가 있다. 묘의 배치는 봉분 전면에 상석을 두고, 상석 우측에 묘비를 세웠다. 그 앞으로 망주석 1쌍을 두었다. 봉분은 무궁화 문향을 한 원형의 보호석을 둘렀고, 후면으로 곡담이 봉분을 에워싸고 있다. 입구에는 선생의 묘역 정화 기념비가 있다.
박영권 기자